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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동서한방병원 박상동 이사장을 만나다

늘 마음의 빚처럼 안고 살았던 중학교 시절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서한방병원 박상동 이사장을 만나다.

 

동서한방병원 박상동 이사장

 

 

 다문화카페 알이랑 1호점의 탄생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동서한방병원 이사장 박상동원장을 찾았다. 72세라는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고 활기찬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중학생 시절 시골 공의진료소에서의 아르바이트를 인연으로 의사의 꿈을 키웠다. 지금의 동서한방병원을 개원하고 의사를 꿈꾸던 시절 자신과의 약속이었던 봉사하는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돈이 없어서 진료비를 곡식으로 대신하는 모습이나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을 돕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던 그는 의과대학를 진학하여 예과를 마치고 다시 한의대로 입학했다. 원래는 양의를 전공했지만 양의학보다 한의학에 더 매력을 느꼈고 동의보감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 매력에 빠져 한의대로 다시 들어간 것이다. 시골에서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무료진료를 하려 계획을 세웠으나 그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결혼도 하고 도시에서 자녀들을 키우다보니 당장 농촌으로 내려가면 아이들 교육문제나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었고 그로 인해 청소년시절 자신과 약속했던 꿈을 실현할 수 없음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늘 마음의 빚처럼 안고 있었던 그 꿈을 71년도 제 이름의 개인병원을 개원하고 나서 당시 영세민이라 불리우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료진료를 통해 조금이나마 갚아나가고자 했습니다. 지금도 70세 이상 노인들의 기본진료는 무료로 해주고 있고 약을 짓는 비용은 원가로 받고 있어요. 그리고 임대아파트가 밀집한 목동제칠복지관, 동방아동복지회에서 운영하는 남가좌에 있는 사회복지관, 홍은동에 있는 복지관 등에서 정기적인 무료진료 활동도 펼치고 있지요. 그래서 청소년기의 꿈을 농촌에서는 이루지 못했지만 도시에서는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절 병원을 운영하는데 난관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박원장은

 

‘그 당시는 의사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잘 운영되었어요. 당시 개업했을 때는 환자가 넘쳐 우리병원 뿐 만이 아니라 다른 병원도 잘되었지요. 어려움으로 치면 사실은 지금이 더 어렵습니다. 배출되는 의사 수도 많아지고 그에 따른 경쟁이 치열해 졌지요. 농촌 평균연령이 높아지고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이제 농촌에서는 의료업을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니 수도권에 모든 의료 인력이 집중되어 포화상태가 되고 있지요. 이러한 경쟁 속에서 경영난에 봉착해있는 병원도 많습니다. 그나마 저희 병원은 전문병원으로 특화되었기에 이나마 운영되고 있지 일반병원이었다면 우리역시 많음 어려움에 봉착했을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 7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하고 건강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결을 물었다.

 

‘제 비결은 사고를 긍정적으로 하라, 항상 웃어라, 포용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가져라, 양보하고 욕심부리지 말아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젊음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 힘이죠. 너무 욕심을 부리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그것이 곧 병이 되고 맙니다. 우리병원의 운영철학 역시‘긍정적으로 사고하라’입니다. 직원 모두가 긍정적이 된다면 다소 병원이 어려워지더라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문화카페 알이랑을 지원한 배경에 대하여 박원장은

 

‘병원이 구조적으로 좀 변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보호자나 환자, 일반사람들이 차라도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카페시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문화카페 알이랑의 운영목적이 좋았습니다. 한국으로 이주해 온 이주여성이 가정과 직장에서 생활적응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던 차에 좋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고자 했던 것이 통했던 것이지요. 저희 입장에서도 직원들 복지와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나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불어 다문화가정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비록 큰 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다문화가정 한 분이라도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컷습니다. 다른 뜻 보다는 다문화가정을 포용하고 그들에게 취업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커피문화가 요즘 병원 쪽으로 많이 확산이 되고 있는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소외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모델로써 동서한방병원의 알이랑이 그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는 박원장은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과 앞으로의 포부도 잊지 않았다.

 

‘사회복지사나 의사나 봉사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약하고, 부족하고, 노년층, 몸이 아픈 환자들, 장애인 모두 다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어요. 이러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힘을 주는 사람들이 전 의사, 사회복지사들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사람들은 타산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돈을 먼저 생각하면 안되는 사람들이지요. 물론 기본적인 대우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같은 대우를 받는다 하더라도 부정적인 사고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과 긍정적인 사고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차이 입니다. 그래서 봉사인은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항상 웃으며 그들을 맞이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그는 ‘우리병원은 중풍전문병원으로 그 역사가 45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치료하고, 연구하고, 인턴레지던트 교육병원으로써 후학을 양성하여 많은 젊고 훌륭한 의사를 배출해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고 책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병원은 부자가 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저 역시 운이 좋아서 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는 베풀면서 봉사하면서 진료하는 병원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동서한방병원은

 

1971년 개원한 박상동한의원 시절부터 동서노인무료진료소를 개설하여 약 7만 3천여 명 정도 무료진료를 해왔으며 1984년 개인병원 최초 한/양방협진병원인 동서한방병원을 설립한 이후로도 70세 이상 무료진료, 사회복지관 무료진료, 라이온스클럽 합동 무료진료, 각종 공공기관, 수해지역 봉사, 노인정, 각종 공공 단체의 꾸준한 무료진료로 누적인원 90만 명,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50억 원의 무료진료를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경로행사, 불우이웃돕기, 지역사회봉사활동, 각종장학회 지원 사업, 수재의연금 등 다각적인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1996년에는 개인병원에서 의료법인으로 전환하여 공익법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2011년에는 보건복지부지정 중풍전문한방병원으로 지정 받음으로써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중풍질환 전문병원으로 인정받았다.